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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매헌 윤봉길 기념관 방문기
    독립운동유적 답사기/서울, 경기 2015. 2. 26. 12:55

    안녕하세요. 스르륵뽕 입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보면 흔히들 10년씩 나누어 1910년대, 20년대, 30년대, 40년대로 나누어 설명하곤 합니다. 

    이것은 시대를 알기 쉽게 10년 단위로 끊어서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그 양상이 변화되어 온

    시대적 구분이기도 합니다. 몇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그 구분법에 의해서 독립운동을 나누곤 하지요. 

    학술적인 내용까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간략하게 나누어 말씀드리면, 1910년대 3.1운동 이후 본격적 독립운동 시작, 

    무장 독립단체 형성, 임시정부설립, 청산리, 봉오동전투 등의 무장투쟁, 20년대 의열투쟁, 임시정부 외교투쟁, 동북지역 유격투쟁 

    등 이지요. 그런데 3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과 정규군 편성 등 개별적인 독립운동이 아니라 체계적이

    고 전방위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게 되는데요. 이렇게 30년대 이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 인물이 바로 매헌 윤

    봉길 의사 입니다.

    또, 매헌 윤봉길 의사를 단순히 일본 고위층에게 천장절 행사에서 폭탄을 던진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의 홍구공원

    폭탄 투척 사건은 사실 우리나라 독립운동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판세 자체에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크고 

    영향력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의거는 당시 중국, 홍콩, 대만 등 동북아시아의 모든 항일활동에 충격을 

    주었고, 이들이 서로 협력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훗날 미국에 항복을 위하여 직접 조인서에 서명을 하게되는 일본 외상

    시게미츠 마모루는 윤봉길 의사의 폭탄에 한쪽 다리가 잘려나가는 부상을 입은 당사자지요. 언젠가 NGC 세계 2차 대전 관련 다큐에

    서 시게미츠 마모루의 항복문서 조인식 영상을 본적이 있었는데 나레이션에서 누군지 설명없이 어떤 사람의 폭탄 테러에 의해서 

    다리를 잃었다고만 설명되었죠. 바로 그 당사자가 윤봉길 의사였던 것 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매헌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도로 주소는 역시 그의 호를 따서 매헌로라고 

    불려지고 있네요. 그의 고향인 충청남도 덕산에도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 방문해보지 못했습니다.


    <매헌 윤봉길 기념관은 서초구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지하철 신분당선을 타고 매헌역(양재시민의숲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이면

      방문할 수 있습니다. 참 찾아가기 쉬운 곳이죠>


    <양재시민의 숲 역에 내리는 매헌 윤봉길 선생과 관련된 인테리어가 너무 반가워 사진에 담아봅니다. 혹시 양재시민의 숲역의 다른 

      이름이 매헌역임을 모르는 분들은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데 이런 인테리어를 통해서 윤봉길 의사의 흔적을 알리는 것은 참 좋은 시

      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굉장히 의미있는 인테리어라서 마음에 들지만, 일반 지하철역과 비교해서 참 예쁜 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철역 5번 출구를 나와서 5분만 걸어가면 이렇게 매헌 기념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헌 기념관은 양재 시민의 숲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날도 주차장에 차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매헌 기념관을 들어서면 먼저 큰 태극기와 윤봉길 의사의 동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헌 기념관의 전체적인 느낌은 다른 기념관들

      에 비해서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었습니다. 워낙 위대하고 알려진 인물이라서 그런데 일찌감치 기념관이 세워진 듯 합니다>

    <기념관 좌측으로 들어서니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록한 연대표가 보였습니다. 연대표 자체도 조금 오래전에 만들어진 느낌이었습

      니다. 이후에도 계속 느꼈지만, 기념관 자체의 리모델링이나 업그레이드가 좀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친필들도 남아있었습니다. 보통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 중국에서 야채장수를 하다가 김구 선생을 찾아가 독립운동

     에 뛰어들어 그의 배움이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는데요, 도올 선생의 독립운동사를 보니 문무를 모두 겸비한 당대 최고 지식

     인이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사례로 여천 홍범도 장군을 들 수 있겠는데요. 글도 모르는 일자무식자로 알려져 있지만, 마찬가지로 문

     무교양을 모두 겸비한 인물이었다고하죠. 돌아와서, 기념관에 남아있는 그의 필적들을 보더라도 윤봉길 의사의 배움의 깊이를 간접

     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홍커우공원 의거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사진입니다. 이 모형도 참 잘 만들어져 있는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낸 모형물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봤던 모형입니다. 추가적으로 한번 사진을 올려봅니다>

    <참고자료 : 천안독립기념관에 있는 홍구공원의거 모형도>

    <이 사진은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 결의를 하고 찍은 사진 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사진이죠.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

      윤봉길 의사는 자신의 시계가 더 비싸니 백범 김구 선생에게 시계를 바꾸자고 했던 일화가 유명하죠. 가끔 이런 독립운동가들의 대

      범한 뒷 이야기를 만날때면 정말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하찮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리고 이 시계가 바로 위 이야기 속의 시계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백범 김구 선생에게 준 시계지요. 이 시계는 광복 후 김구 선생이

      보관하고 있다가 윤봉길 의사의 고향으로 돌아가 윤봉길 의사의 어머니께 전했다고 하는데요. 안타갑게도 윤봉길 의사의 어머니는

      김구 선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가 폭탄 투척이후 연행되는 사진입니다만.....최근 한 방송사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로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사진이라고 하죠. 당시에 나왔던 중국측 보도들을 종합해보면 윤봉길 의사는 일본인들에게 구타를 당해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고

      짐짝처럼 차에 실어져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봤을 때 양팔을 잡혀서 연행되는 사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정

      설입니다. 다만, 여러 기념관에서 윤봉길 의사의 연행 사진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같은 사진이 매헌 기념관에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매헌 기념관은 자료들이나 전시상태가 보기에 굉장히 오래된 느낌

     이 강해서 리모델링 자체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장면이 제가 NGC 2차 세계대전 관련 다큐에서 봤던 항복 조인식 장면 사진 입니다. 최근에는 칼라로 복원되어 영상을 볼 수 있

      습니다. 32년도 홍커우공원 의거에서 시게미츠가 다리가 잘린 것은 이미 45년 종전 이전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다리가 잘린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도올 선생의 말씀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으로 잡혀가 결국 사형을 당하시고 맙니다. 사형을 당하는 순간도 잔악한 일본놈들은 일부러 윤봉길 의사의 이

      마에 일본의 국기 형상이 만들어지도록 총살형을 시켰죠. 나쁜놈들 입니다. 그리고 당시 윤봉길 의사를 묶었던 형틀로 사용된 나무

      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박열 의사가 수습하여 현재는 효창공원내에 삼의사 묘역에 안치되어 있습

      니다. 아직까지 유해를 발굴하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와 함께 말이죠....>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깔끔하게 만들어진 기념관이었지만 다른 기념관들에 비해서 오래되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 노후되었다는 느낌

    은 조금 컸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전시실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느낌(딱히 머라 특정 부분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이 강했습니다.

    이런 부분들과 수정되어야 할 오류들이 수정되지 않은 부분이 더 그런 느낌을 가지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근 윤봉길 기념

    사업회의 재정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요. 재정 상태가 좋아져야 기념관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기념관 자체는 굉장히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으니 방문하시기에는 참 좋은 곳 입니다.

    특히나 양재시민의 숲은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굉장히 큰 숲 공원이니 주말에 산책을 즐기며 돗자리라도 가지고 가족 단위로 방문

    하기에는 최고의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꼭 한번씩들 방문하시길 추천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윤봉길 의사와 관련해서는 꼭 이야기 하고 싶은 분이 한분 있는데요.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에 초대장 없이 입장할 수 

    있던게 바로 일본인 부부로 위장했기 때문인데요...(구파 백정기 의사도 의거를 준비했으니 입장권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죠)

    이때 윤봉길 의사의 부인 역할을 했던 분이 바로 이화림 이라는 분입니다. 또, 이봉창 의사 의거를 위해서 도왔던 분도 이화림 선생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화림 선생은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이는 이후 이화림 선생이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였기 때

    문인데요. 이 분도 약산 김원봉 선생과 마찬가지로 이념논쟁이라는 굴레의 피해자였던 것 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투척이 있기까지

    의 정신적인 고뇌와 번민을 이화림 선생도 똑같이 느꼈을테지요.....이런 고마운 분들은 꼭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윤봉길 의사가 본인의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을 올리며 포스팅을 마칩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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